오늘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세계의 유산이 된 우리나라 백제의 왕도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공주와 부여 그리고 익산을 소재로 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에 등재가
됨으로써 우리나라 12번째 세계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백제 후기 200년간 흥망성쇠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수도 한성을 잃은 슬픔과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기 위해 처철한 몸부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백제역사유적지구".
이름마저 조금 생소한 우리의 역사. 세계는 왜 백제를 주목하고 있을까?
■ 고요히 잠들어 있던 왕의 무덤‥ 1500년 만에 눈을 뜨다
백제 제25대 왕이자 백제에 제2의 부흥기를 가져온 무령왕(武寧王). 자신의 주인보다 더 이름을 떨친 왕의 무덤은 대체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기에 그렇게 ‘유명인사’가 되었을까? 도굴 때문에 훼손된 다른 무덤과는 달리,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 돼 높은 역사적 가치를 품고 있는 무령왕릉. 그럼에도 ‘최악의 발굴’이라 불리고 있는데…
“몇 달이 걸렸어도 그 나무뿌리들을
가위로 하나하나 베어 내고 장신구들을 들어냈어야 했다.
고고학 발굴의 ABC가 미처 생각이 안 난 것이다.”
- 당시 발굴 단장 故 김원룡 회고록 中
누군가 안에서 사진을 찍다 청동숟가락을 부러트리기도 하고, 발굴단은 유물이 훼손될 수 있다는 압박감에 작업을 단 12시간 만에 마무리했다. 한국 고고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세기의 발굴이자 동시에 수많은 오점을 남긴 졸속 발굴… 하지만 그 안엔 뛰어난 백제 문화와의 만남이 있었다.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무령왕릉의 내부. <역사저널 그날>은 특별히 최태성 선생님을 무령왕릉으로 직접 모셨다. 그런데 최태성 선생님은 과연 무엇을 보고 그렇게 놀랐을까?
“아무도 들어온 적 없는 완벽히 보존된 곳인데…
왜 이렇게 산산조각 나있지?”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웅진으로 쫓기듯 내려와 혼란의 시기를 걷던 백제. 무령왕은 많은 전투를 통해 영토를 회복하고, 전쟁과 기근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위해 대민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이렇게 무령왕은 국력과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된다.
■ 상상초월 글로벌 국가 백제! 금동대향로를 통해 만나다
백제가 낙타 한 마리, 당나귀 한 마리, 양 두 마리, 흰 꿩 한 마리를 주었다.
- 『일본서기(日本書紀)』 中
이어지는 성군들의 통치로 나라의 기틀을 잡은 백제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사비, 즉 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성왕(聖王)은 자신이 선택한 도시 사비를 국제교류의 중심으로 만드는데...
능산리 절터의 진흙 속에서 발견된 금동대향로는 그런 역사적 기록을 사실로 입증해 보이는 완벽한 유적이다. 금동대향로에 그려진 희귀동물들로 글로벌 국가 백제를 만나보자.
■ 제2의 수도 익산! 그 곳에 담긴 무왕의 정치적 승부수?
『서동요』로 잘 알려진 무왕!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는, 실제 역사 속에서 뛰어난 전략가로 평가받았다. 한강 유역을 탐낸 신라 진흥왕의 배신으로 120년 간 이어져온 나제 동맹은 깨졌고 성왕은 전사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새롭게 왕위에 오른 무왕은, 넘어진 백제를 일으키기 위해 익산을 제2의 수도로 선택한다. 그 곳은 무왕의 권력투쟁 및 왕권강화의 정치적 승부수이자, 계획도시이다.
왕궁리 유적에서 발견된 깊이 3.4m의 대형구덩이는 백제시대의 공동 화장실이다. 주목할 점은 그 근처에서 발견된 얇고, 기다랗고, 가벼운 막대기이다. 이 대형 구덩이 근처에서 발견된 이것은 과연 어떤 용도로 쓰이는 물건일까?
이렇게 수도를 옮기며 몇 번이나 화려한 재기를 꿈꿨던 백제. 이들은 서기 660년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다시 일어서고자 했던 꿈은 이뤄졌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로 영원한 부흥기를 맞을 백제! 2015년 7월 5일 일요일 밤 10시 30분에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