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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삼춘과 아마짱

숨을 멈춰야 살 수 있는 여인들, 해녀

 

 

지난 4월16일 양석봉 해녀삼춘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제부도에서는

존중과 친근함의 표현으로 삼춘이라고 부르고 있다. 양석봉 할머니는 78년간 제주도에서

물질을 해온 제주해녀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해녀를 대표하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6년전 겨울.

 

 

 

그날도 면도날 처럼 아주 차가운 겨울바람과 파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바다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해녀를 해서 번 돈으로 4남매를 키우고 아들을 4개 국가에 유학을 보냈다.

세계인들은 제주해녀의 정신에 찬사를 보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유네스코가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 대표 언론이 일본의 잠수녀들을 칭하는 "아마"에 대한 기사들을 대서측필하기

시작을 한 것이다. "해녀"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를 낙관했던 우리나라로서는

허를 찔린 것이다.

과연 우리 "해녀"가 유네스코 뮨화유산으로 등재가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아마"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아마열풍의 진원지인 이와테현 구지시의 작은 어촌을 찾았다. 그곳에는 도시

구석구석 마다 "아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멀리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아마"들이

옷을 사입고, 그들이 팔고 있는 해산물을 사먹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동일본대지진의 대표적인 패해지경기다. 일본 정부에서는

재건을 위해서 대대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그 순간 그들에게 눈에 들어온것이

바로 "아마"였다. "아마"가 일본 여성의 불굴의 정신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강조한 "아마짱"이라는 드라마는 최고시철률 27%를 기록하며 일본에 아마열풍을

일으킨 것이다. 이로인해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을 했고 "아마"가 되겠다며

찾아오는 젊은 여성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연 젊은 여성들이 "아마"에 끌리는 힘은

무엇일까?

한국에 "해녀"와 일본"아마"는 맨몸으로 바다에 드러가 해산물을 채취를 한다.

한국에서는 4,415명이 일본에서는 2,174명이 해녀와 아마로 일을 하고 있다.

일본의 "아마"하고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고유의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는

제주해녀의 우수성을 세계가 주목을 해서 제주도는 해녀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지난

10년간 준비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뒤늦게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런 판세는 몇년만에 역전이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마의 공향인 미에현을 중심으로 정부와 8개현이 함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총력을 다하고있다. 아마의 기원을 제주해녀라고 하고 있던 일본학자들까지

공공연하게 인정을 했던 입장도 갑자기 칠회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마의 역사를

3천 년 전까지 앞당기며 자신들이 원조임을 내세우고 있다. 거기에 외교적인 채널가지

동원을 해서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파리의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해녀가 유네스코에 등재 되는 것을 자만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일본의 "아마"가 단독으로

등재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서둘러 공청회를 열고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올

3월에 등재신청을 했다. 하지만 심사가 보류되면서 2016년 하반기 등재여부가 결정이 된다.

취재과정에서 일본에게 유네스코 등재의 꿈을 심어준 것은 제주도였고 2007년도에 제주도

측에서 일본에 공동등재를 먼저 제안했었다는 놀라운 사실도 드러나게 된다.

이 모습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형편없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단독으로 유네스코 등재신청서를 제출한 제주도는 2016년 유네스코 등재를 낙관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될까? 지금 제주도에는 해녀가 4415명 있다. 지난 3년 제주도 바다를 떠난

해녀만 92명이나 된다. 이런 상태로 계속 진행이 된다면 앞으로 20~30년 사이에 제주도

바다에서는 해녀가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 마저 돌고 있는 현실이다.

제주해녀들은 말한다. "내 딸들이 해녀 일을 한다고 하면 난 말릴 거야","해녀로 살면서

한번도 보람을 느껴 본적이 없어"라고 하지만 일본에 '아마"는 다르다.

가업으로 아마를 하고 있는 3대가 탄생을 하기도 하고 도시에서 직장인으로 생활을 하던

젊은 여성들이 아마가 되겠다며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 아마들은 이렇게 말을 한다. " 아마로 일하면서 자긍심을 느긴다". "아마는 너무

멋진 직업"리라고 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제주도 해녀들을 바다에서 떠나게 하고 무엇이 아마들을 바도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이 프로그램은 김치와 기무치 전쟁에 이은 한.일전 <해녀 VS 아마>를 추적해보고,

진정한 등재가 무엇인지, 진정한 승부가 무엇인지를 가려본다.

또, 지난 8년 동안 제주 해녀를 기록해온 영상을 통해 해녀들의 삶과 죽음, 그들의

진정한 가치들을 재발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인어공주를 촬영 할 당시, 3개월 동안 우도에 있었어요. 그때 바다에서 해녀 분들의

 물질작업을 많이 지켜보았던 기억이 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바다에 앉아

그분들을 바라보았어요. 그 잔상이 마치 숨비 소리처럼 오래도록 제 마음 속에 있었어요.”

 

2004년 전도연과 함께 영화 <인어공주>의 주인공역을 맡았던 박해일씨. 그에게 섭외 전화를

했던 것이 방송한달 전. 그는 기획안을 다 본 뒤에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고,

그때부터 시시때때로 해녀에 대한 참고자료를 더 보내 달라고 채근했다.

 ‘ 이미지 좋고 연기력 좋고 목소리 좋은 배우가 그냥 감정을 담아 읽으면 될텐데

 무슨 공부를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나..’ 사뭇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마지막 편집본을

 미리 챙겨 시사 하면서 느낌을 잡고, 하루 전에 대본을 꼼꼼히 챙겨보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그냥 특별한 배우가 된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박해일씨는 해녀들의 바다로 자맥질해 들어왔고, 해녀의 바다와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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