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신라와 백제의 운명을 가른 관상성 전투에 대해서 방송을한다.
관산성 전투는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전투 중에 한가지였다.
고구려의 남진에 맞서 두 나라는 공맹을 맺었다. 그러나 신라의 심상치 않은 행보가
포착이 되었다. 신라를 오랜적이였던 고구려와 은밀하게 접촉을 하고 있었다.
동맹국 백제를 향한 신라의 도발이였던 것이다.554년 벌어진 관산성 한판 승부 .
과연 이 전투가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 무너진 백제의 꿈, 신라의 민낯이 드러나다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이 본격화되자 위협을 느낀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맺는다. 시작된 ‘나제동맹’의 시대. 이후 120여 년이 넘게 돈독한 관계가 지속되는데.... 그러던 553년. 이들의 동맹에 와해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신라군이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유역을 침입해 자국영토로 편입시킨 것! 백제 성왕이 꿈꾸던 고토, 한강유역 탈환이 한순간에 좌절된 상황. 그런데 신라가 한강유역에 눈독을 들인 것은 비단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4년 전, 신라의 도발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는데...
오랜 동맹을 깬 신라, 그 이유는 무엇일까?
■ 등 돌린 신라, 백제의 뜻밖의 선택
신라의 배신에 숨겨진 정황이 드러났다! 고구려가 은밀하게 신라와 접촉했다는 것! 고구려는 신라가 탐내던 한강유역을 조건으로 신라에게 고구려를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한편, 고구려와 신라의 야합으로 신라에게 두 번의 뒤통수를 맞은 성왕. 그런데 백제 성왕은 신라를 향해 응징의 칼을 꺼내기는커녕,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인다. 자신의 딸과 진흥왕의 결혼을 제안한 것인데... 예상과 달리 신라를 향해 우호의 손짓을 건네는 성왕. 과연 그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 백제 VS 신라, 건곤일척의 한판 승부
554년, 신라의 관산성을 향한 백제의 공격이 시작됐다! 백제는 왜, 대가야 연합군과 함께 신라를 압박해 나가고... 초반부터 백제의 맹렬한 공격에 밀리는 신라! 백제의 관산성 장악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인데... 그런데, 세간에 알려진 관산성 전투 승리의 주역은 바로 백제가 아닌 신라! 전투 초반부터 기세등등하던 백제의 패배요인은 다름 아닌 성왕의 죽음이었다!
관산성 전투의 초기에는 백제가 우세해 각간우덕과 이찬,탐지등이 거느린 신라군을 패주시켜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신주군주,김무력의 신라 원군이 당도하자 양국 사이에 대접전이 벌어졌다. 이때 성왕은 신라를 습격하고자 직접 보기 50여 기를 거느리고 야간에 구천에 이르렀는데, 신라 복병의 기습공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성왕은 전선에 나가 있는 왕자 여창을 위문하러 가는 길에 신라군에게 길을 차단당해 포로가 되어 죽임을 당했고, 그의 머리는 신라북청계하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성왕의 전사로 관산성에서의 양국 대결은 신라의 대승리로 끝났다. 이때 백제는 왕을 비롯해 4명의
좌평이 전사하고, 또 3만 명에 가까운 사졸들이 전사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관산성 전투는 양국이 국가의 운명을 걸었던 싸움이었다. 따라서 승리한 신라는 이미 점령하고 있던 한강 하류 유역에 대한 기득권을 확고히 할 수 있었던 반면, 백제는 막대한 전쟁 손실과 그 여파로 인해 동성왕 이후 성왕대에 일시 강화되었던 왕권이 다시 동요되기 시작하였다.
성왕의 죽음으로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간 백제 중흥의 꿈, 반대로 신라에겐 삼국통일의 발판이 된 관산성에서의 그날! 2015년 10월 4일 일요일 밤 10시 35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야합과 배신의 드라마가 펼쳐진 관산성 전투로 돌아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