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짱구 엄마, 1세대 영화 의상 디자이너 이해윤
- ‘한국 영화 의상계의 대모’ 이해윤 영화 의상 디자이너
▶ 이해윤, 그녀는 원래 배우였다!
한국영화 의상계를 개척한 이해윤, 영화계에 첫 발을 들일 당시 그녀는 의상 디자이너가 아닌 배우였다는데.. ‘첫 작품’은 이규환 감독의 영화 <춘향전>.
어릴 적 친구인 당시 조감독이었던 유현목과의 인연으로 우연히 구경을 가게 된 촬영 현장에서 이해윤은 노기생을 연기한다. 이를 시작으로 그녀는 다음 작품인 <자유전선>에서 인민군 아들을 둔 어머니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자신의 연기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영화배우를 그만두려고 마음먹는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배우 임운학 씨의 “그럼 뭐가 하고 싶으냐?”라는 한 마디에 그녀는 대답한다. “영화 의상 한번 제작해 보겠소.” 그리고 맡게 된 영화 <단종애사>, 의상 디자이너 인생 시작이었다.
▶ 갑옷, 생각의 틀을 깨다!
1950년대 한국 영화는 사람이 많이 나와야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관객들은 사람이 많이 출연한 영화가 대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영화계는 사극 속 전쟁 장면이 필수 요소가 되었고 두 번째 작품에서 이해윤도 갑옷을 제작하는 일을 맡게 된다. 처음에는 베니어합판을 잘라 갑옷을 만들지만 재질의 특성상 갑옷 특유의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는다. 갑옷에 대해 고민을 하던 이해윤, 깡통으로 갑옷을 만들고 페인트칠을 한다.
“영화 의상도 연구를 해야 해. 그래야 창조가 돼.”
베니어합판, 깡통, 양은을 거쳐 오늘날 플라스틱에 이르기까지.. 갑옷의 변천사로 보는 영화 의상 제작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들어본다.
▶ ‘그 당시는 태극무늬가 없었어요’
영화 의상을 만들면서 겪었던 위기의 순간, 이해윤은 두 가지 일을 꼽는다.
이만희 감독과 작업한 <7인의 여포로>, “인민군 옷 멋있게 만들어서 영화 한번 찍어 봅시다.” 감독의 말 한마디는 큰 파장을 불러온다. ‘반공법 위반’, 그녀가 만든 옷이 인민군을 돋보이게 한다는 이유였다. 한 달간의 교육을 받은 후 영화는 <돌아온 여군>으로 개작되어 개봉되지만 의상으로 인한 위기는 다시 찾아온다.
77년 개봉한 <난중일기>에서 이순신 장군의 갑옷에 넣은 태극무늬가 문제가 된다. 그 당시에는 태극무늬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녀는 고증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 규장각 고서에서 우리 옷을 발견하다!
사극을 촬영하기 전 거쳐야 하는 과정, 고증. 하지만 그 당시에 고증을 정확하게 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없었다.
그녀가 생각한 방법, 운현궁 상궁과 한복에 금박을 찍어 넣는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이해윤은 운현궁 상궁에게 대원군이 입었다던 관복을 받고 여러 가지 궁중의상 만드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아교와 도장을 이용해 전통방식 그대로 금박 찍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모든 고증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규장각을 찾는다. 그리고 규장각 고서 속 성별, 신분, 체격에 따른 수학적 비율이 담겨진 우리 한복을 발견하고 단순히 작품을 위한 고증이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고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데..
50년 넘게 한국 영화에 옷을 입힌 이해윤. 굵직굵직한 행사용 의상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손에서 만들어진 의상만 수만 벌, 그리고 그 안에서 그녀가 찾고자 했던 우리 옷의 가치와 고증의 필요성. 다음 세대를 위한 이해윤의 마지막 바람과 고증을 위한 노력을 TV회고록 <울림>을 통해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