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에서는 전남 나주 명하마을에서 쪽으로 염색을 하고 있는 가족을 소개한다.
원래 명하마을은 영산강 지류에 위치하고 있어 강의 잦은 범람으로 벼농사 보다는
습지식물인 쪽 재베를 많이 하는 곳이였다. 하지만 6.25전쟁이후로 쉽게 염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들어오면서 그 명맥은 끊어지는 듯 했지만 여전히 이맘땍 되면 쪽꽃이 피어나는 곳이 있다.
그곳은 5대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너 이어져온 가업을 해오고 있는 윤대중 씨의 쪽 밭이다.
이른 새벽부터 쪽을 거두며 잎이 상할까 7천평 쪽밭을 하나하나 낫을 들고 베고 있다.
대중 씨는 쪽빛에 대한 고집을 선친인 윤병운 선생에게 배웠다.
고 윤병운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115호 염색장으로 대중 씨의 아버지다.
대중 씨는 4남 1녀 중 막내로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 곁에서 쪽 농사를 짓고 염색을 했다.
이런 대중씨에게는 쪽은 생업이자 가업이였다.
선친은 보랏빛의 도는 짙은 남색을 진정한 색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들이 옛방식대로 몰려받은 쪽빛은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닮았다.
평생을 아버지와 함께 염색을 했던 어머니처럼 지금 대중 씨 옆에는 아내 최경자씨가 같이
길을 가고 있다.
19년전 휴가를 보내려고 고향 나주로 내려온 스물여덟 아가씨는 이곳에서 쪽 농사를 짓던 서른셋
남자에게 첫눈에 반했다. 첫 만남에 뽀뽀를 해버린 용감한 사랑.
이들은 만난지 한 달만에 결혼을 한다.
쪽밖에 모르는 남자를 사랑해 쪽까지 사랑을 하게 된 경자 씨는 지금 여섯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시아버지 곁에서 염색을 배웠다. 젖먹이 아기를 업고 방송통식대학 의상학과 공부도 마쳤다.
시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경자 씨는 14년 동안 묵묵히 모시고 살았다.
시아버지의 유지는 "나로 인해 100명만 먹고 살았으면"하는 것이었다.
그 유지를 이루기 위해서 염새장 전수교육조교인 남편은 집에서 색을 빚고 이수자 아내는 마을 이장에
사회적 기업 대표로 그리고 쪽 체험 강사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염색장 기능 보유자였던 할아버지와 쪽 염색을 하고 있는 아빠와 엄마르르 보고 자란 육남매는
다섯 살만 되면 염색을 한다고 한다
종아, 은지,은빈,은서,판각,은나 이렇게 육남매 아이들은 가르치고 묻지 않아도 쪽빛은 가장 친근한
색이다.
체험객들이 방문을 하면 육남매는 엄마,아빠의 훌륭한 보조가 된다.
대중 씨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오듯이 열살 아들 판각이도 아빠를 닮고 싶어 한다.
열살 판각이는 입버릇처럼 아빠는 5애 나는 6대라고 말을 한다.
판각이 엄마는 정성껏 보관한 오래된 한복을 꺼낸다. 한복은 판각이의 증조할어버지가 염색을 하고
윤병운 선생이 열세살에 입었다는 쪽빛 한복이다.
예전에는 벼 농사보다 쪽 농사를 더 많이 했던 마을은 지금은 명하마을에서 판각이네만 유일하게
쪽 농사를 하고 있다.
선친은 사라졌던 쪽빛을 다시 찾아낸 분이라고 하면 아들 대중 씨는 더 많은 쪽빛을 알리고 싶다.
이미 3년전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마을 축제를 열어 생긴 수익은 다시 마을로 화원 있는
명하마을 쪽 축제. 매년 10월이면 쪽축제가 열린다.
지금은 많이 없어지고 명맥만 유지해가고 있지만 명하마을 대중씨 부부와 육남매는
지금도 쪽빛의 전통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